2010~2019
“너희가 곧 내 손이니라“
2010년 4월


“너희가 곧 내 손이니라“

우리는 우리의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지지하고 치유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한 도시가 폭격을 당하면서 커다란 예수 그리스도의 동상이 크게 파손됐습니다. 잔해 속에서 동상을 찾은 주민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동상은 그들의 신앙과 그들 삶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던,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상징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동상을 대부분 복원해냈지만 손은 너무 심하게 파손되어 복원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조각가를 고용해서 새로운 손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사람들은 그대로 놔 두고 싶어했습니다. 전쟁의 비극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동상은 손이 없는 채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주민들은 예수 그리스도 동상 발판에 다음 한 마디 말이 적힌 푯말을 세웠습니다. “너희가 곧 내 손이니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손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심오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구주에 대해 생각할 때 저는 손을 내미시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위로하고 치유하고 축복하며 사랑하기 위해 손을 뻗으시는 모습 말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십니다. 그분은 겸손하고 온유한 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람들 가운데에서 걷고 보살피시며 희망과 구원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께서 필멸의 삶 동안 하신 일이며,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 살아 계시다면 하실 일입니다. 이는 또한 그분의 제자이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이 아름다운 부활절 아침에 우리 생각과 마음은 이스라엘의 소망이자 세상의 빛이신 그분께 향합니다.

구주께서 보이신 완벽한 모범을 따를 때, 우리 손이 구주의 손이 되고 우리 눈이 구주의 눈이 되며 우리 마음이 구주의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감싸 안을 수 있습니다

저는 교회 회원들이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모습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보여 준 비이기적인 희생과 넉넉한 인심에 대해 들으면 우리 가슴은 감사하고 행복한 기분으로 벅차 오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발하는 빛이며, 여러분은 선한 마음과 연민으로 지구촌 곳곳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낙담하여 자신이 교회에 맞지 않다고 여기며 결국 교회에 발을 끊고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회원들에 대해 듣곤 합니다.

소년 시절,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독일은 분단되고, 황폐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병들고 죽어갔습니다. 저는 솔트레이크시티에 있는 교회에서 보낸 식량과 의복이 담긴 인도주의 물자들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그 옷에서 나던 냄새와 복숭아 통조림의 달콤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런 물품 때문에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떤 회원들은 그런 개종자들을 깔보기도 했습니다. 비아냥거리며Büchsen Mormonen, 즉 “통조림 몰몬”이라 부르면서 증오했는데 그런 신회원들은 세상적인 필요 사항만 해결되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몇몇은 정말 교회를 떠났지만, 많은 이들이 남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복음의 달콤함을 맛보았으며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의 품에 안겨 따스함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그들은 “집”을 찾았습니다. 서너 세대가 흐른 지금, 많은 가족들이 교회에 들어온 유래를 찾다 보면 그때 그 개종자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환영하고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복장이나 외모, 말투나 행동이 조금 다르더라도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를 모자란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주위에 있는 그런 사람들을 북돋아 줍시다. 환영하는 손길을 내밉시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인간미와 연민과 사랑을 특별히 듬뿍 부어 주어 그들이 마침내 집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게 합시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려는 유혹이 들 때면 “세상을 사랑하사 모든 사람을 그에게로 이끄시려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신]” 구주를 기억합시다.

“그는 이르시기를, 너희 모든 땅 끝이여, 내게로 오라 …… 모든 사람이 서로 같은 특권을 가졌나니 아무도 금지 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

경전을 읽으면서 저는 구주께서 가장 혹독하게 꾸짖으신 대상은 주로 자신이 부유하고 권세 있으며 의롭다고 착각하여 자만심으로 가득했던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주께서는 기도하러 성전에 간 두 남자의 비유를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존경받는 바리새인이었던 한 남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나머지 한 남자는 미움을 받던 세리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에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2

사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3우리 모두에게 자비가 필요합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대에 불려갔을 때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결점들에 대해 용서받고 싶지 않습니까? 구주의 품에 안기기를 열망하지 않으십니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 베풀 줄 안다면 참으로 옳고 타당한 일입니다.

우리의 개인 생활이나 세상에서 죄를 수용하거나 악을 경시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때로는 열정이 지나쳐서 죄와 죄인을 혼동하고 성급하고 매몰차게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 현대 계시를 통해 우리는 “영혼의 가치가 하나님 보시기에 큼”4을 압니다. 우리가 우주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듯이 다른 영혼의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참으로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이해하면 주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련과 슬픔으로 가득 찬 세월을 겪은 한 여성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오래 된 20달러짜리 지폐와 같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구겨지고 찢어지고 더럽고 헤지고 흠집이 났죠. 하지만 이래 봐도 20달러 지폐예요. 아직 가치가 있죠. 그렇게 안 보이고 닳고 해졌더라도 제게는 여전히 20달러만큼은 가치가 있는 거예요.”

우리의 손은 위로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마음에 새기고, 연민을 품은 채 우리의 마음과 손을 사람들에게 내밉시다. 모든 사람은 각기 나름대로 어려운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사람을 판단하기보다 지지하고 치유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슬퍼하는 이들과 함께 슬퍼하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로하라는 계명을 받았습니다.5

고통 받는 사람을 보며 그 사람은 그럴 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서 합당하지 못한 일입니다. 부활절 안식일은 구주께서 우리 모두가 짊어진, 심지어 고통 받아 마땅해 보이는 사람들의 고통과 고난과 질병까지도 기꺼이 짊어지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기에 좋은 날입니다.6

잠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7 사랑이 끊어지지 않게 합시다. 특히 위급한 상황에 처할 때 형제와 자매들 곁에 있어 줍시다.

우리의 손은 봉사할 수 있습니다

유태인 전래동화에는 같은 밭을 함께 일구던 아브람과 짐리라는 두 형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일과 수확량을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습니다. 추수가 끝날 무렵, 짐리는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와 일곱 아들을 부양해야만 하는 형이 수확량 중 절반만 가져가는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혼자 사는 자신이 너무 많은 양을 차지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짐리는 옷을 입고 조용히 밭으로 나갔습니다. 자신이 수확한 곡식단 중에서 1/3을 가져다 형의 곡식단에 얹어 두고는 옳은 일을 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침대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에 아브람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혼자 살며 일을 거들어 줄 아들도 없는 가난한 동생 짐리가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그토록 열심히 일한 짐리가 수확량 중에서 절반만을 가져가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아브람 생각에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조용히 밭으로 가서 자신이 수확한 곡식단 중 1/3을 가져다가 사랑하는 동생의 곡식단에 얹어 두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밭으로 간 두 형제는 둘 다 자신의 곡식단이 전과 같아 보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두 형제는 그날 밤에 슬그머니 집을 빠져 나와서 전날 밤에 했던 일을 되풀이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서로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형제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사랑과 고마운 마음이 복받쳐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8

이것이 바로 연민의 정신입니다. 타인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9타인의 행복을 추구하며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입니다.10

진정한 사랑은 실천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실천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노래하는 편지나 시를 쓸 수도 있고, 사랑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를 수도 있으며, 사랑을 촉구하는 설교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을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그 말은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11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사랑에 대해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일생에 걸쳐 매일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군중을 피하신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셨습니다. 잃은 자들을 구출하셨습니다. 사랑으로 다가가라는 공과를 가르치기만 하고 실천은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지는 않으셨습니다. 가르치기만 하신 게 아니라 또한 “약한 자를 [돕고] 처진 손을 일으켜 세우며, 연약한 무릎을 강건하게” 12하는 방법을 직접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완벽하게 보살피는 방법을 아십니다. 구주께서 내미신 손길에 닿은 사람들은 고양됩니다. 그 결과, 더 훌륭하고 강하고 나은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손이라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손은 구주의 손입니다

구주께서는 사랑을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13인 큰 계명이라 말씀하시며 우리의 생활, 가정, 와드, 지역 사회, 조국에서 추구할 분명한 우선 순위를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예쁘고 좋은 것들, 율법, 그리고 할 일을 적어 놓은 목록에만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큰 계명을 소홀히 여긴다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며,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마치 바람에 날리는 물 없는 구름이나 열매 없는 나무일 뿐입니다.14

하나님 아버지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알맹이 없이 그분의 교회라는 껍질만 걸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가르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랑이 없다면 선교 사업이나 성전 사업 또는 복지 사업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영을 창조하신 동기는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시도록 구주를 겟세마네 동산으로 이끈 힘도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은 구원의 계획을 이룩한 위대한 동기입니다. 행복의 근원이자 영원히 솟아나는 치유의 샘이며, 귀중한 소망의 분수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우리 손과 마음을 내밀면 우리에게도 아주 훌륭한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 영이 치유되고 더 깨끗해지며, 강해집니다. 더 행복해지고 평온해지며, 성령의 속삭임에 마음을 더 활짝 열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과, 그리고 그분의 아들을 선물로 주신 것을 제 온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모범, 흠 없고 비이기적인 희생에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에 머물지 않으시고 무덤에서 일어나셨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그분은 살아계시며 그분의 권세와 복음을 인간에게 회복하고자 지상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어떤 남자와 여자가 되어야 할지를 완벽한 모범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 부활절 안식일에, 그리고 앞으로 매일을 살아가면서 구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안아 주고 위로하고 치유해 주시는지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생각하며, 그분의 손이 되어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의 품 안에 안긴 듯한 느낌을 받게 하겠다고 결심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1. 니파이후서 26:24, 25, 28

  2. 누가복음 18:9~14 참조.

  3. 로마서 3:23.

  4. 교리와 성약 18:10.

  5. 모사이야서 18:9 참조.

  6. 앨마서 7:11~13; 교리와 성약 19:16 참조.

  7. 잠언 17:17.

  8. Clarence Cook, “Abram and Zimri”, in Poems by Clarence Cook(1902), 6~9쪽 참조

  9. 마태복음 22:39 참조.

  10. 마태복음 7:12 참조.

  11. 고린도전서 13:1.

  12. 교리와 성약 81:5.

  13. 마태복음 22:40.

  14. 유다서 1:12절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