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2009
집으로 돌아옴
2008년 10월


집으로 돌아옴

우리가 그분의 양을 치라는 구주의 권고를 받아들일 때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우리의 영향력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제 고향 우루과이 미나스의 겨울은 매우 춥습니다. 해질녘이면 어머니께서는 거실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벽난로에 장작을 지피셨습니다. 하루 일과를 마친 부모님과 누이들, 그리고 저는 차례로 한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벽난로의 따뜻함과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어우러진 아늑한 거실은 제가 영원토록 소중하게 간직할 느낌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내와 제가 우리의 가정을 꾸린 후에도, 우리 모두는 벽난로 주변이나 또는 단순히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할 때마다 느낄 수 있는 따뜻한 느낌을 지닌 곳으로 자주 함께 모이곤 했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느낌입니까! 우리의 집, 가정, 피난처는 얼마나 사랑스러운 곳입니까!

여러 해 동안 우리 가족은 여러 나라에서 살았는데, 그 각각의 나라에서 지내는 동안 참석한 모든 와드에 있는 회원들에게서 우리는 똑같은 따뜻한 느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각 회원들은 그런 즐거운 느낌을 경험할 기회를 가져야 하며 그들은 재활동화 및 선교 사업을 위한 우리의 노력을 통해 이러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페루에 있는 몇몇 스테이크 및 지방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몇 가족의 이름을 언급할 것입니다. 카우소 가족, 밴다 가족, 발가스 가족, 그리고…. 이 목록은 계속되며, 그 속에는 교회로 다시 돌아온 천칠백 명이 넘는 회원들의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그들은 스테이크 회장, 감독, 정원회 및 보조 조직 지도자들로부터 교회로 돌아오라는 권고를 받은, 페루 전역에 있는 각기 다른 와드, 지부, 스테이크, 지방부의 회원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교회로 돌아오도록 그리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도록 돕는 책임을 맡은 전임 선교사들과 다른 사람들의 권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분들 모두에게 우리는 말씀드립니다. “다시 돌아오신 것을 정말로 환영합니다!”

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도록 만든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1년 동안 재활동화 및 침례와 확인 의식을 통해 이분들을 돌이키려고 노력한 14개 스테이크와 한 선교부내 4개 지방부의 협력이었습니다.

구주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이러한 노력에 영감을 더해주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내 양을 치라”(요한복음 21:16)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의 가르침에서도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저활동 회원 및 감정이 상하고, 비판적이고, 죄를 지은 분들께 돌아오라고 간청해 왔습니다. ‘돌아와 주님의 식탁에서 향연을 즐기고 성도들과의 우정을 통해 오는 감미롭고 만족스러운 열매를 맛보십시오.’”(“과거를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감,” 리아호나, 2008년 5월호, 89쪽)

앨마는 그의 형제들의 영혼에 대해 큰 괴로움을 느끼며, 다음과 같이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저들을 다시 주께로 인도함에 있어 성공을 거두게 해 주시겠나이까.

“주여, 보시옵소서, 저들의 영혼은 귀하며, 저들 중 많은 자가 우리의 형제들이오니, 그러므로 주여, 우리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사, 우리로 이들 우리의 형제들을 다시 주께로 인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앨마서 31:34~35)

페루, 리마, 푸엔테 피에드라 스테이크의 앙헬 알라콘 회장은 제게 다음과 같은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선교사, 감독, 보조조직의 몇몇 지도자, 그리고 저는 오전 8시 30분부터 정오까지 저활동 회원과 몇몇 비회원, 그리고 신회원들을 방문합니다.”

그의 이야기의 이 시점에서, 제 마음속에는 찬송가 한 소절이 떠올랐습니다.

“사랑해 목자의 마음

귀여운 어린 양들

그 중 한 마리 길 잃어

추웁고 굶주리네

보아라 선한 목자는

잃은 양 찾아가서

기쁨으로 데려와서

보화를 간직하네”

(“사랑해 목자의 마음,” 찬송가, 144장)

왕래하기가 어려운 지역에 살고 있던 발가스 형제는 어느 토요일 아침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휴대전화로 자신의 도착을 알리는 알라콘 회장의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발가스 형제가 말했습니다. “놀랍군요. 저희 집까지 오기란 매우 힘든 일인데요.”

알라콘 회장의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글쎄요, 전 지금 형제님의 집 문 앞에 서 있고 형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형제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형제님을 내일 교회 모임에 오시도록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랜 세월 동안 교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이가 대답했습니다. “교회에 가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다시 돌아오는 그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태복음 25:35~36, 40)

몇 주 전 어느 일요일 모임에 참석하는 동안, 저는 저활동이 된 지 수년 만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한 형제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 회원이 아니었던 그의 아내와 함께였습니다.

왜 돌아올 결심을 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친구 페르난도와 이 훌륭한 감독님이 제게 돌아올 것을 권했고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수 년 전에 교회를 찾았고 제 마음 속에는 여전히 타고 있는 조그마한 불꽃이 있습니다. 그 불꽃이 강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형제로서, 그 불꽃이 계속 살아 있도록 우리가 함께 그 불꽃을 피웁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서로를 얼싸안았습니다.

우리의 형제들을 향한 관심과 배려, 보살핌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결국, 우리가 봉사하고 이러한 봉사가 우리 이웃의 복리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베냐민 왕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보라, 내가 이러한 것을 너희에게 이야기함은 너희로 지혜를 배우게 하려 함이니, 너희가 너희 이웃을 섬길 때 너희는 다만 너희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임을 너희로 배우게 하려 함이니라.”(모사이야서 2:17)

우리가 그분의 양을 치라는 구주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모두가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게 도울 때 수많은 저활동 가족들, 그리고 교회 회원이 아닌 사람들의 삶에 미칠 수 있는 우리의 영향력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이러한 경험들은 그분의 양을 치라는 주님의 권고를 조용히 받아들인 수천 명의 형제들의 경험들 중 일부일 뿐입니다.

사랑과 봉사는 서로의 동반자 관계를 추구하는 쌍둥이와 같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아름다운 표현으로서, 우리와 이곳에 함께하고 있지 않은 이들을 찾아 나섭시다. 이는 우리 모두가 이 교회의 회원으로서 지니고 있는 책임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봉사를 통해 단 한 영혼이라도 교회로 데려온다면, 그리고 그것을 우리 인생의 목표로 삼는다면, 우리 자신과 우리가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도록 돕는 이들에게 가져다 줄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들어라 오늘도 네게

간절히 하시는 말

“나의 품 안에서 떠난

양 찾지 않겠느냐?”

(찬송가, 144장)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각자의 이름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임을 간증드립니다.

우리의 아버지와 구주의 사랑에 대한 제 간증을 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며, 그분의 아들을 주셔서 그분을 통해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저의 구주이자 주님이자 스승이자 구속주이신, 그분에 대한 제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