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도다 그 기초

청년 독신 성인을 위한 교회 교육기구 영적 모임, 2014년 11월 2일, 옥든 태버내클, 유타 주 옥든


 

오늘 밤 홀스트롬 자매와 함께 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 정말 기쁩니다. 오늘 밤 여러분의 얼굴을 보면서 이 방송을 시청하는 세계 곳곳의 독신 및 기혼 청년들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저희는 여러 곳을 다니며 교회를 두루 방문할 기회가 있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분을 만나 뵈었으며, 또 여러분과 비슷한 분들을 만났습니다. 개종한 청년들과 더욱더 개종되려고 애쓰는 청년들을 만납니다. 잃어버렸으나 다시 찾은 청년,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자기 자신을 발견한 청년들도 만납니다. 우리와 신앙이 다른 사람도 만나고 최근에 침례 받았거나 여러 세대 동안 가족이 교회 회원인 사람들도 만납니다. 저희는 그러한 여러분 모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며, 여러분에게는 영생의 모든 축복을 받을 기회가 넉넉하게 주어졌다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교회 지도자들을 대신해서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말씀을 마음을 다해 전합니다. 선지자와 사도님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분들을 잘 아는 저는, 그분들이 교회의 청년 성인들에게 참으로 깊은 관심을 두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의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필요합니다!

이 모임은 장엄한 유타 옥든 성전 옆에 있는, 아름답게 개조된 옥든 태버내클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옥든 성전과 이 태버내클은 6주 전에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이 재헌납하셨습니다. 옥든 성전은 교회가 전 세계 곳곳에서 운영 중인143개 성전 중 하나입니다. 제가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그보다 더 긍정적인 의미가 있는 말씀을 드리겠는데, 제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성전은 고작 여덟 곳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얼마나 서두르고 계시다는 이야기가 됩니까!

오늘 밤 저는 성전에 비유하여 기초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모든 성전을 설계하고 건축할 때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바로 건물이 완공되면 쉽사리 볼 수 없는 부분인 기초입니다. 그 예로, 이것은 현재 건축 중인 펜실베이니아 필라델피아 성전의 예상도입니다. 완공되면 이 놀라운 건물은 지붕 높이 25미터에, 천사 모로나이상까지 하면 높이가 59.5 미터에 이르는, 보시는 바와 같은 웅장한 건물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시선을 끄는 위풍당당한 건물이 될지라도 여전히 세찬 바람과 스며들어 오는 지하수의 영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나쁜 조건들에 어떤 조치를 하지 않으면, 심각한 손상이 생기고, 심지어 이 훌륭한 건물이 파괴되어 버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기술자들은 이런 힘들이 끊임없이 성전을 공격하리라는 것을 감안하여 설계를 했고, 시공 회사는 건물 지하에 약 9.8미터 깊이의 구멍을 팠습니다. 구멍은 건물을 지을 확고한 기초를 세우기 위해 펜실베이니아의 화강암을 뚫어 만든 것입니다. 그런 다음, 록 앵커가 장착된 화강암 암반에 콘크리트로 된 지반과 기초를 연결해서 강풍과 세찬 지하수를 견딜 수 있게 했습니다. 화강암에는 약 15에서 53미터 깊이로 앵커(구조물과 지반을 결합시키기 위하여 설치되는 것-옮긴이)를 박아 평방 인치당 약 113톤의 하중을 견디게 했습니다. 앵커는 양쪽으로 각각 4.6미터 간격을 두고 설치했습니다.

제가 이런 세부 사항까지 언급하는 이유는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어떤 의미로도 일시적일 뿐인 그런 건물을 지으려 할 때와는 달리, 때로 우리는 (영생이 되길 희망하는) 우리의 영속적인 삶을 세울 때는 우리의 기초를 설계하고 건축하는 데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 결과, 위험한 힘에 크게 노출되고 쉽게 흔들리게 됩니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대로 둔다면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조차 잊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상 생활은 시험의 기간, 즉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리의 합당성을 증명하는 시간입니다. 시험 받기 위해 우리는 도전과 고난에 맞서야만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부스러뜨릴 수 있고, 우리 영혼의 표면은 갈라지고 산산조각이 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기초와 진리에 대한 우리의 간증이 우리 안에 깊이 자리잡지 않으면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신앙과 간증에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잠시뿐입니다. 결국 우리는 자신만의 강건하고 깊이 자리잡은 기초를 가져야만 반드시 찾아 올 인생의 폭풍우들을 견뎌낼 수 있을 것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시며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6:48~49)

우리의 기초를 세워야 하는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반석”으로 칭하셨고 “이 반석 위에 세우는 자는 결단코 넘어지지 아니하리라.”(교리와 성약 50:44)라고 단언하셨습니다.

모세는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다]”(신명기 32:3~4)고 말했고,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 나의 방패시요 …… 나의 높은 망대시요”(사무엘하 22:2~3)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에녹에게 “나는 메시야, 시온의 왕, …… 하늘의 반석”(모세서 7:5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파이는 주님을 “내 구원의 반석”이자 “의의 반석”(니파이후서 4:30, 35)이라 찬양했습니다. 이사야는 주님을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사야 28:16)로 칭했습니다. 바울은 사도와 선지자가 교회의 기초라 말하며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다]”(에베소서 2:20)고 말했습니다. 2

이것은 새로운 교리가 아닙니다. 어떤 형태로 말했든 간에, 우리는 모두 이것을 이해합니다. 우리는 부모님, 초등회, 청녀와 아론 신권반 및 정원회, 세미나리, 종교 교육원, 전임 선교사, 친구, 지역 교회 지도자, 경전, 살아 있는 선지자와 사도들로부터 그 교리를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 대다수에게 왜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요?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그것을 생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슴과 영혼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끔 생각하거나느끼는 것 이상이어야 하며, 그것이 곧 우리 자신이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또한 그분의 영원한 계획과 우리의 관계, 그리고 그분의 아들이자 우리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가 아주 단단하게 구축되어 진정한 우리 기초의 초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영원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아들 또는 딸이라는 것이,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축복을 감사히 누리는 수혜자라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정체성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기초 위에 다른 정당한 정체성이 단단히 뿌리내리게 되는데, 왜냐하면 무엇이 영원하고 무엇이 일시적인지를 알고 우선순위를 세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세상에서 높이 평가하는 몇몇 정체성과 그에 수반되는 행위를 버리겠다고 결심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 “굳도다 그 기초”를 좋아합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몰몬 태버내클 합창단이 부를 때가 제일 좋습니다. 연차 대회 때 합창단 바로 앞에 앉아서 웅장한 오르간 소리와 합창, 음악, 가사를 듣고 음미하다 보면 합창단과 함께 서서 노래 부르고 싶어집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컨퍼런스 센터 밖으로 쫓겨날 것 같아서 꾹 참습니다. 바로 4주 전에 연차 대회 일요일 오전 모임에서 부른 이 사랑받는 노래를 함께 들어봅시다. 그 가사를 음미해 보십시오. 특히 마지막 절인 7절을 들어보십시오. 실은 7절이지만 합창단은 4절로 불렀습니다.

최근에, 저는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 및 교회 본부에 배속된 모든 총관리 역원과 함께 솔트레이크 성전에서 모임을 했습니다. 보통의 성찬식이나 다른 모임에서 3절을 부르고 마치는 것처럼 이 아름다운 찬송가를 3절까지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몬슨 회장님이 “7절을 부릅시다”라고 말씀하셨고, 살아 있는 선지자와 사도들을 포함한 그 훌륭한 총관리 역원 모두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구원 얻으려고 품에 안긴 영혼

저희 원수에게 내 주지 않으리

온 지옥 떨며 떨어뜨리려 하나

결단코 하나님 결단코 하나님

저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3

이것은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지를 묘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적인 기초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기초를 세우는 과정은 중요한 사업이며, 이를 유지하는 것은 평생에 걸쳐 노력해야 하는 과업입니다.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며, 아울러 여러분이 어떻게 하고 계신지가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노력을 #cesdevo를 사용해 소셜 미디어로 공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 영적인 기초를 세우기 위해 …… 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완성해서 공유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답변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저는 제 영적인 기초를 세우기 위해 …… 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을 완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듣고 배울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말씀드린 그런 기초를 세운 적이 없다거나 태만으로 그 기초에 금이 가고 허물어지기까지 했다 하더라도, 다시 노력하기에 늦은 때란 결코 없습니다. 필요한 도구는 다 있습니다. 그것은 기초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도구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압니다. 지속적이고 진실한 기도, 매일 경전을 통해 하는 복음 공부, 교회 모임에 활발히 참여하고, 특히 진정한 의도로 성찬을 취하며, 이타적인 봉사를 계속하고, 부지런히 성약을 지키는 것이 그에 포함됩니다.

또 다른 필수적인 도구는 바로 살아 있는 선지자들의 권고입니다. 선지자, 선견자, 계시자로 지지받은 열다섯 분이 지상에 계십니다. 그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신권 열쇠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에게서 수시로 가르침을 받습니다. 우리는 해마다 여러 번 손을 들어 그분들을 지지합니다. 매일 그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메시지를 접하는 대단한 축복은 누리면서도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감사하는 것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님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선지자의 권고에서 안전에 이르는 길을 찾는다는 것은 신앙이 강한 사람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지자가 말씀하실 때, 신앙이 별로 없는 사람은 그저 현명한 사람이 좋은 충고를 한다는 정도로 생각해 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만일 선지자의 권고가 자신이 받아들이기에 편안하고 적절하며, 자신이 바라는 바와 일치한다고 생각되면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충고라고 간주해 버리거나 자신의 입장은 그 권고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치부해 버립니다.”

아이어링 회장님의 말씀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선지자의 권고를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관한 선택은 훌륭한 충고를 받아들여서 그에 대한 유익을 얻을 것이냐 아니면 현재의 상태에 만족할 것이냐를 선택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믿는 것 또한 그릇된 생각입니다. 선지자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토대를 바꾸는 일입니다. 더욱 위험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4

기초를 세우고 유지할 때, 비전, 결심, 자기 수양이라는 세 가지 원리를 기억하십시오. 비전은 보는 능력입니다. 복음의 맥락에서 우리는 때로 그것을 “영원한 관점”이라 부릅니다. 야곱이 설명했듯이 그것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 사물을 장차 있을 그대로”(야곱서 4:13) 보는 것입니다.

결심은 기꺼이 약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그것을 “성약”이라 부릅니다. 공식적으로 우리는 신권 의식을 통해 하나님과 성약을 맺습니다. “그것의 의식으로 경건의 능력이 나타[난다]”(교리와 성약 84:20)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외에도 자신에게, 배우자에게 (혹은 배우자가 되기 위해), 친구에게, 그리고 우리가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약속을 해야 합니다.

자기 수양은 자신의 비전에 따라, 또한 결심한 것에 따라 일관되게 살아가는 역량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자기 수양을 계속해 나가는 것은 성장에서 핵심을 차지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배움과 행위에 밀접하게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영적인 기초의 힘은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드러나며, 특히 낙담하고 시련을 겪을 때 그렇습니다.

오래 전에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은 1873년 1월 2일에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한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난 캐럴라인 헤멘웨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캐럴라인은 22세 때 조지 하먼과 결혼했습니다. 그들은 일곱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하나는 유아기에 죽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녀는 39세 때 남편을 여의고 홀몸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동생 그레이스는 캐럴라인의 시동생인 데이비드와 결혼했습니다. 1919년, 악성 독감이 유행할 때 데이비드는 심한 독감에 걸렸고 그의 아내 그레이스도 병이 들었습니다. 캐럴라인은 자신의 자녀뿐만 아니라 동생 부부와 그들의 자녀까지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 아들을 낳은 그레이스는 채 몇 시간도 못 되어 죽고 말았습니다. 캐럴라인은 그 갓난아기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돌보아 생명을 구했습니다. 3주 후에는 캐럴라인의 딸 애니가 죽었습니다.

이제 캐럴라인은 두 자녀와 남편과 동생을 잃었습니다. 시련이 너무 컸기에 몸도 쇠약해졌습니다. 결국 심한 당뇨병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어린 아기를 돌보았습니다. 아기의 아버지인 시동생은 매일 어린 아들을 보기 위해 왔습니다. 후에 데이비드 하먼과 캐럴라인이 결혼하자 그들 가정에는 이제 13명의 자녀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5년 후에는 데이비드에게 재난이 덮쳐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그는 씨앗을 심기 위해 강한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그 약이 몸에 묻어 처참한 결과를 낳은 것이었습니다. 피부와 살이 떨어져 나가고 혀와 치아가 허물어질 정도였습니다. 이 부식성 용액은 문자 그대로 그를 산 채로 삼켜 버렸습니다.

캐럴라인은 이 끔찍한 병에 걸린 그를 극진히 간호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그녀에게는 자기가 낳은 다섯 자녀와 동생이 낳은 여덟 자녀가 남게 되었는데 유산이라곤 113헥타르(34만 평)의 농장뿐이었습니다. 그녀와 자녀들은 땅을 갈고 씨를 뿌리고 물을 대어 필요한 것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수확을 했습니다. 그 당시 캐럴라인은 상호부조회 회장이기도 했는데, 그녀는 18년간 이 직책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녀는 대가족을 돌보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하루에 빵 여덟 개를 구웠고 일주일에 40개의 빨래 더미를 세탁했습니다. 또한 톤 단위가 넘는 과일과 채소를 통조림으로 만들었으며 천 마리의 닭을 쳐서 적으나마 현금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자립을 목표로 했으며 게으름을 죄로 여겼습니다. 자신의 가족을 돌보고 다른 사람도 돌보았습니다. 그녀는 자기 주변에 주리거나 헐벗거나 추위에 떠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는 친절의 정신으로 일했습니다.

후에 그녀는 유진 로빈슨과 결혼했는데 그가 얼마 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사망하기까지 5년간 그를 간호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당뇨병으로 고생하다가 쓰러졌고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자녀들에게 심어 준 근면과 열심히 일하는 습관은 해마다 노력에 대한 보상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녀가 길러온 동생의 어린 아기는 그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자라났으며 사랑과 감사의 정신으로 유산을 대학에 기증하여 그녀의 이름으로 아름다운 건물이 서게 된 것입니다.” 5

단단한 기초는 세상의 공격을 막는 최후의 보루입니다. 우리는 암몬과 그의 형제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주께로 돌이[켜] …… 다시는 떨어져 나가지 아니하였[다]”(앨마서 23:6)고 묘사되었던 레이맨인들처럼 되고자 진심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메리 앤 프랫은 1837년에 팔리 피 프랫과 결혼했습니다. 그들은 미주리 주로 이주하자마자 다른 성도들과 함께 끔찍한 박해에 시달렸습니다. 폭도들이 팔리와 선지자 조셉을 미주리 주 파웨스트에서 붙잡아 투옥시켰을 때, 메리 앤은 침상에서 꼼짝할 수도 없는 위중한 상태에서 어린 두 자녀를 돌봐야 했습니다.

그 후 메리 앤은 감옥에 갇힌 남편을 찾아가 한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메리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축축하고 어둡고 더럽고 환기도 전혀 안 되는, 한쪽에 작은 쇠창살만 나 있는 그런 지하 감옥에서 남편과 함께 지냈다. 우리는 이런 곳에서 잠을 자야 했다.”

팔리가 석방된 후, 메리 앤과 남편은 뉴욕과 영국에서 선교 사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표현에 따르자면, 두 사람은 “지친 몸으로 유타에 마지막으로 집합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팔리는 다시 선교 사업을 하던 중에 결국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메리 앤 프랫은 진실하게 남았습니다. 그녀는 힘차게 말했습니다. “저는 처음 들었던 설교에서 이 교회의 교리가 참됨을 확신하고 침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굳건하게 신앙을 지키는 사람이 셋뿐이라면 그중 하나가 되리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견뎌내야 했던 그 모든 박해 속에서도 언제나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속에서 그런 다짐이 흔들린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6

오늘밤 다루고 있는 주제는 아주 개인적인 일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실수와 성공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일을 대신 해 줄 수는 없습니다. 누구도 우리의 영적인 기초를 세워 주지 못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짓는 건축가인 셈입니다.

힐라맨은 다음처럼 힘차게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의 아들들아,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이신 우리 구속주의 반석 위에 너희가 너희의 기초를 세워야 함을 기억하고 기억하라. 그리하면 악마가 그의 강한 바람을, 참으로 회리바람 가운데 그의 화살들을 내보낼 때, 참으로 그의 우박과 그의 강한 폭풍이 너희에게 부딪칠 때, 그것이 너희를 이겨 비참과 끝없는 재난의 심연으로 너희를 끌어내리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세워진 반석으로 인함이라, 이는 확실한 기초이니 만일 사람들이 그 위에 세우면 결코 넘어지지 아니할 기초니라.” (힐라맨서 5:12)

제 인생에서 가장 굳건한 기초를 쌓은 경험은 36년 전에 있었습니다. 대학을 마친 후 아내 다이엔과 저는 제가 나고 자란 곳인 호놀룰루로 가서 인생의 다음 절기를 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그 절기는 27년간의 긴 세월에 걸쳐 이어졌습니다. 선지자의 전화 한 통으로, 저희는 하와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성전 한 곳이 더 생기면서 하와이 라이에 성전이라 불리게 된 하와이 성전은 1919년 11월 27일 추수감사절에 히버 제이 그랜트 회장님이 헌납하셨습니다. 하와이 성전은 커틀랜드와 나부 성전을 제외하고 유타 밖에 세워진 첫 번째 성전이었습니다. 거의 60년 동안 하와이 성전은 하와이 성도들을 위한 곳이었고, 또한 그 시간 대부분 동안 태평양과 아시아 곳곳의 성도들도 이용했습니다.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성전 문을 닫고 증축과 개조를 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결국, 그 성전은 1978년 6월 13일에 재헌납되었습니다.

재헌납은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이 하셨는데, 그분의 제1 보좌인 엔 엘돈 테너 회장님과 제2 보좌인 매리온 지 롬니 회장님도 함께 오셨습니다. 또한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이셨던 에즈라 태프트 벤슨 장로님을 포함하여 십이사도 및 칠십인 정원회에서도 몇 분이 오셨습니다. 교회 본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열린 행사에 그토록 많은 선임 총관리 역원들이 오신 것은 교회 규모가 훨씬 더 커진 요즘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1978년에 그런 축복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젊은 신권 지도자로서 성전 재헌납 협의회의 요청으로 킴볼 회장님과 그 일행을 위해 현지의 안전과 교통편을 책임졌습니다. 그저 뒤에서 지원하는 일이었으므로 당시의 제 역할을 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 임무 덕분에 저는 킴볼 회장님을 곁에서 뵐 수 있었습니다. 3일간의 성전 재헌납식과 엄숙한 집회, 대규모 지역 대회를 포함해서 한 주 내내 교회 회장님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분이 권세와 권능으로 가르치고 간증하고 예언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치지 않고 “한 사람”씩 일일이 돌보며, 모임과 일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쓰이는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만남을 청하시는 것도 지켜보았습니다. 그분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손에 든 도구”(앨마서 17:9)로서 쓰이고 있었습니다. 아주 감명 깊은 일이었습니다!

그 주가 끝이 나고, 공항에서 킴볼 회장님과 그 일행을 환송했습니다. 제 임무는 제한적인 지원 역할이었음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면서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킴볼 회장님은 제게 오셔서 변변치 않은 제 노력에 고마움을 표하셨습니다. 체구가 자그마한 그분에 비해 저는 몸집이 꽤 컸습니다. 회장님은 제 옷깃을 잡고 휙 끌어당겨 자신의 키에 맞게 제 몸을 숙이게 하셨습니다. 그러고는 제 뺨에 입을 맞추며 고마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몇 발짝을 움직이시다가 다시 걸음을 돌려 오셨습니다. 그분은 저를 붙잡고 똑같은 방식으로 끌어당기셨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른 쪽 뺨에 입을 맞추시며 저에게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떠나셨습니다.

그 해 바로 전 해에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님의 아들과 손자가 쓴 전기가 출판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책을 사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스펜서 울리 킴볼 회장님과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한 후, 공항에서 돌아온 저는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강렬한 마음으로 책꽂이에서 그 두꺼운 책을 꺼냈습니다. 그 후 며칠 간, 깨어 있는 시간 중 다른 할 일이 없을 때마다 저는 그 전기를 읽고 사색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책은 제가 깊이 사랑하는 분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또한 그 책은 저를 사랑하시는 분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읽고 있던 그 책의 주인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요청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제게 가장 큰 유익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들뜬 경험을 통해 저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씀드리기에는 너무나 개인적인 문제이고, 또 몹시 부끄럽기도 합니다. 저는 가장 중요한 신회의 구성원을, 특히 구주요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만큼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저는 그분의 “전기”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도와 금식, 사색을 통해 그 책이 제가 깊이 사랑하는 분에 관한 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책은 저를 사랑하시는 분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읽고 있던 그 책의 주인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요청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제게 가장 큰 유익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젊은 친구 여러분! 이 지식으로 제 삶과 제 가족의 모든 것이 바뀌었음을 간증드립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지식이 마술처럼 우리를 흠 없이 만들거나 삶을 쉽게 만들었다는 뜻은 아님을 덧붙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지식은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니파이후서 31:20)이라는 기초적인 희망을 주었습니다. 포기하거나 그만두거나 후퇴하겠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하게 되셨으면 합니다.

이런 규모의 회중에 속해 있는 여러분처럼 훌륭한 사람에게도 큰 기쁨과 고통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각자 삶의 무게에 버거워하고 계실 것입니다. 가정사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고, 신앙 문제로 힘겨워할 수도 있습니다. 직접 저지른 일이든 부당하게 당한 일이든, 지난 일로 씨름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견디기가 너무 힘든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단단한 기초를 세우는 것만이 여러분의 짐을 덜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난 하나님의 자녀” 7 찬송가를 입으로만 부를 것이 아니라 그 노래가 주는 메시지를 가슴과 영혼 속에 새기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계속 의지한다면 가장 험난한 시기 가운데서도 화평과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중심축이 될, 역사적인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기초를 세우고 굳건히 하기로 결정하고 자기 수양의 노력을 발휘하는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중독적인 습관이나 혐오스러운 행위를 포기하는 날이 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최우선에 두는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대가도 아깝지 않은 일입니다. 실로, 그것은 우리 인생사의 핵심입니다.

교회의 모퉁잇돌이시며 우리 삶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제 간증을 이 많은 청중에게 가능하다면 개인적으로 공표하는 바입니다. 그분의 성스러운 이름에 대해 간증드립니다. 주님의 권세와 사명,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분의 속죄에 대해 증거합니다. 그 속죄가 있었기에 과거 또는 현 상황이 어떻든 관계없이 누구나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모로나이서 10:32 참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증드립니다. 아멘.

  1. 토마스 에스 몬슨, “굳도다 그 기초”, 리아호나, 2006년 11월호, 62쪽

  2. Robert J. Matthews, “I Have a Question,” Ensign,, Jan. 1984, 52의 경전구절 목록에서 각색

  3. “굳도다 그 기초”, 찬송가 35장

  4. “권고에서 안전한 길을 찾음”, 성도의 벗, 1997년 7월호, 25쪽

  5. 고든 비 힝클리, “오백만 회원- 정상이 아니라 하나의 이정표”, 성도의 벗, 1982년 7월호, 72~73쪽

  6. The story of Mary Ann Pratt was taken from Sheri Dew, Women and the Priesthood: What One Mormon Woman Believes (2013), 94–95; 또한 Edward W. Tullidge, The Women of Mormondom (1877), 406–7 참조.

  7. “난 하나님의 자녀”, 찬송가 187장